무슨 자기 소개서 쓰는 달갑지 않은 기분이었다. 막말로 니가 뭔데 나를 평가해? 라는 묘한 반발심과 함께. 하지만 이들 모두 나와 동일하게 기준 모를 평가를 받으며 괴로워했을 터. 둥글둥글하게 살아 나가자. 치밀어 오르는 더러움을 참으며 초대장 소유자들의 온갖 요구를 다 들어 주었다. 감감 무소식. 내가 쓴 댓글은 시간을 모르면 어디 들어 박혀 있는지도 알 수 없기에 찾기 위해서는 백만번 정도 비밀 번호를 쳐야 했다. 구구절절 설명했던 최초의 목표 블로그는 티스토리를 어느 정도 파악 후 만드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나는 여기에 작은 아지트를 마련하였다.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두서없는 카테고리와 엉망진창의 난독을 유발할 의식의 흐름 기법 서술 그리고 방문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차갑고 퉁명스러운 바보같은 곳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곳은 어렵게 허락받은 나의 안식처이므로 이곳의 지배자는 바로 나다. 일단은 묵혀 두었던 응어리를 모두 다 풀어 내고 내 머리 속에 빈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소셜 네트워크에 그렇게 똥을 싸대는 것도 결국 이런 대나무숲이 필요했던 것이니까. 일촌도 이웃도 친구도 아무도 없다. 여기는 내 똥간이다. 뿌지직뿌지직.


한편으로는 아 어떻게 하면 나를 더욱 즐겁게 만드는 초대장 배포 이벤트를 할까도 벌써 생각한다. 랜덤으로 숫자를 정해 놓고 비밀 댓글 순서대로 당첨된 숫자에게 보내기? 아니면 내가 당한 것처럼 대기업 자기소개서형? 어차피 초대장을 받은 사람이 블로그를 개설하여 운영을 할 지 말 지는 당최 알 수가 없다. 어떻게 그걸 짧은 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애써 판단하려고 할 수록 돌아오는 허탈함은 훨씬 클 것이다. 바보들. 그냥 아등바등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을 남보다 먼저 자기가 가지고 싶을 때 가지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즐기면 되는데. 하지만 선배의 마음으로 너그럽게.


중이병이 한참 도지던 시절로 돌아가 일기나라에서부터 싸이월드 다이어리, 네이버 블로그, 다음 블로그, 네이트 블로그 안 거친 곳이 없다. 제일 오래 머무를 수 있었던 곳은 싸이월드 다이어리였지만 이제 그 곳도 수명을 다하였다. 일촌이라는 족쇄가 나를 옭아맨다. 간간히 손으로 다이어리도 썼지만 오프라인의 종이에 나의 무언가를 풀어낸다는 것은 아주 두려운 일이다. 왜냐면 그 종이를 내가 가지고 다니니까. 내 가방에서 나오고 내 방에 보관되는 그것을 누군가 읽기라도 한다면 아아, 하지만 나는 이 곳에서 그저 레겐샤인이라는 별명으로만 존재한다. 아무도 이 대나무숲에서 내가 있는 곳을 알 수 없다. 혹여 알아낸다 하더라도 가벼이 쫓아내 버리면 그만. 아니면 새로운 대나무숲을 찾는다.


그간의 경험으로 처음부터 마구 헤집지 않기로 한다. 금방 지칠 뿐더러 애써 시작한 안식처가 엉망진창이 될 테니. 그러니까 나는 행복하다. 초대장을 받은 순간 머리맡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기분으로 눈도 미처 뜨지 못한 채 꿈결처럼 가입했다. 잘하자. 이르지도 늦지도 않았고 비로소 머무를 곳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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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레겐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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